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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서정주의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눈이 내리고 있다. 2월, 어쩜 올겨울 마지막 눈일지도 모르겠다. 올겨울은 특히 추웠다. 코로나로 인해, 가뜩이나 춥게 느껴졌던 겨울은 너무 길고 추웠다. 그래서 눈이 내리는 날은 서정주의 시가 자꾸 생각났다. 평소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던 눈이 올해는 더욱 춥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오늘 내리는 눈도 같은 기분이다. 서정주의 시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라는 시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추운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서정주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살 아이 -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 더보기
김소월의 눈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공기와 낮은 기온! 이런 날 내리는 눈은 포근하기보다 쓸쓸하게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 속의 눈은 김소월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쓸쓸한 눈! 이 눈이 그치면, 엄청 추워진다고 하는데, 그것이 더 걱정이 된다. 눈 김소월 새하얀 흰 눈, 가비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임의 마음. 더보기
나희덕의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의 '그런 저녁이 있다' 시에 등장하는 풍경은 내게도 익숙하다. 꽃이 피어 있는 하천가의 둑방! 저물 무렵의 대기!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풍경! 이런 것들은 모두 나도 자주 경험하는 것들인데, 나희덕 시인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펼쳐놓은 걸까? 하천가를 걷다가 '참 좋다!' 생각한 것들은 마치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다.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 더보기
정현종의 '굴뚝' 이건 몇 년 전, 서울의 어느 지하철 역 스크린도어에서 발견한 정현종 시인의 '굴뚝'이라는 시다. 청년의 시절이었던 젊은 때, 정현종 시인의 시들을 정말 좋아했다. 당시, 정현종 시인의 시들은 지적이고 조금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우연히 발견한 시인의 시는 너무 편안하고 소박하다. 꾸밈도 없고 선선하고 유머까지 있어 보인다. 나는 그래서 혼자 배시시 웃었다. 나도 나이가 드니 이런 시들이 좋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젊었을 때도 '좋아하는 시인'이었는데,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시인'인 것이다. 굴뚝 정현종 내 어깨에는 굴뚝이 하나 있어 열 받거나 가슴에 연기가 가득할 때 그리로 그것들을 내보낸다. 어떤 때는 연기가 많이 나고 어떤 때는 빈집 같다. (어떻든 나는 굴뚝 .. 더보기
나태주의 '좋다' 여름, 길고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되었다.하늘이 파랗고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행복한 마음이다.전염병으로 제대로 운신 못하는 상황이더라도 행복감을 선사하는 계절이 감사하게 느껴졌다.이런 감정에 싸여 있자니, 몇년 전 어느 산길에서 본 나태주 시인의 '좋다'라는 시가 떠올랐다.시인의 감정이 딱 이런 기분이었을 거다.코로나로 인해, 사람들마다 입에 두른 마스크 때문에 시인처럼 입가에 미소를 띤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이렇게 2020년 가을을 맞이했다. 좋다 나태주좋아요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그래요새파란 물감을 머금은 하늘이선선히 불어오는 이 바람이오가는 사람들의 미소띤 모습이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모습이좋아요 좋아요 참 좋아요 더보기
윤동주의 '무서운 시간' 이 사진은 지난 여름, '팬텀싱어' 시즌 3의 한 장면이다. 당시, 한 참가팀이 윤동주 시, '무서운 시간'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불렀다. 나는 '무서운 시간'이란 시를 여기서 처음 알았다. 노래를 듣는 내내 가사에 집중했다. 너무 슬픈 시다. 마음이 절로 슬픔으로 가득 찼다. 죽음을 앞둔 청년의 불안한 심경과 공포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게다가 노래가 되니, 더 마음에 울림이 크게 느껴졌다. '팬텀싱어'를 통해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알게 된 것은 정말 좋았다. 무서운 시간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 더보기
윤곤강의 '나비' 윤곤강의 '나비'에 등장하는 나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날개가 찢긴 나비이다. 그런 나비가 날지 못한 상태가 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슬픈 느낌이다. 이 시는 자연의 존재 속에 감정을 이입한 자연친화적인 화자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곤강의 '나비'를 '생태적'인 특성의 시라고 하려나? 마치, 교과서에 실렸을 법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아침 산책길에 꽃 위에서 본 나비가 떠올라 적어본다. 나비 윤곤강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 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의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처럼 나비.. 더보기
윤동주의 '나무' 청년인 채로 남은 윤동주의 시들은 맑아서 슬프다. 많은 시들이 순수한 청년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무'란 시가 가장 그랬던 것 같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짧고 간결한 '나무'는 그래서 더 슬프다. 나무 윤동주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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