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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헤르만 헤세의 '봄의 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 2020년 봄, 어느 때보다도 헤르만 헤세의 '봄의 말'이라는 시가 실감난다. 노인에게 더 치명적인 이 병원체는 무섭게 전 지구를 휩쓸며, 공포를 주고 있다. 자연이 얼마나 냉혹한지 요즘처럼 실감하기는 처음이다. 올봄에는 내가 진정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많이 무서웠다. 나는 헤세의 말대로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죽을 운명에 던져진 인간에게 헤르만 헤세의 '봄의 말'은 냉정하기만 한 경구같다. 봄의 말 헤르만 헤세어느 소년 소녀나 알고 있다.봄이 말하는 것을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아라!늙은이들은 모두 봄이 소곤거리는 것을 알아듣는다.늙은이여, 땅 속에 .. 더보기
천상병의 '난 어린애가 좋다' 산길에서 우연히 읽게 된 천상병 시인의 '난 어린애가 좋다'라는 시! 그저 아이들을 좋아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담하게 표현했을 뿐인데... 다 읽고 나니, 마음 가득 따뜻함이 퍼진다. 천상병 시인의 시는 다 그랬던 것 같다. 그의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서 아름다운... 그 감동이 어디서 어떻게 전해지는지 통 알 수가 없다. 꾸밈으로 담을 수 없는 마음이 천상병 시인의 시에는 깃들어 있다. '난 어린애가 좋다'라는 시도 그 중 하나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천상병 시인을, 마치 산길에서 만난 듯 반갑다. 난 어린애가 좋다 천상병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더보기
김용택의 '강가에서'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동네 하천가로 운동을 하러 간다. 운동이라야 강물을 따라 걷는 정도가 다인데, 물을 바라보면서 걷노라면, 지난날의 별아별 것들이 다 떠오른다. 슬프기도하고, 아쉽기도 하고,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한 온갖 감정들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강물이 아니었다면, 어쨌을까? 생각한다. 강물은 그런 내게, '그냥 물처럼 흘러가게 놔두어라!' 속삭이는 듯 하다. 물처럼, 세월처럼 흘러갈 거라고!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 하다. 김용택 시인의 '강가에서' 시는 그런 강물의 마음을 꼭 닮았다. 강가에서 김용택강가에서세월이 많이 흘러세상에 이르고 싶은 강물은더욱 깊어지고산그림자 또한 물 깊이 그윽하니사소한 것들이 아름다워지리라어느날엔가그 어느.. 더보기
이병기의 '냉이꽃' 전에 없던 전염병으로 온 세상이 얼어붙어도 봄이 왔다.개나리들이 꽃이 지고 푸른 잎들이 돋아날 즈음, 냉이와 꽃다지들이 꽃을 피웠다.고개를 깊숙히 숙이고 하얀 냉이꽃과 노랑 꽃다지꽃을 보았다.가녀린 이 꽃들에게 인간의 일이 뭔 상관일까?생각하니, 이병기 시인의 냉이꽃이 떠올랐다. 냉이꽃 이병기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낮이면 세 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그리고 또한 때로는 시도 읊고 싶구나 지난 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피는 꾀꼬리가그 얼마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어떨 건가수소탄 원자탄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냉이 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더보기
안도현의 제비꽃에 대하여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니, 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터질 듯 맺혀 있는 산수유꽃 꽃망울을 보기도 했다. 아마 오늘은 꽃이 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하루 종일 밖을 나가지 못했다. 곧 들판에는 봄꽃들이 앞다투며 필 것이다. 봄꽃,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제비꽃! 제비꽃에 대한 추억이 특히 많아서 내겐 '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제비꽃이다. 제비꽃을 노래한 안도현의 '제비꽃에 대하여'도 빼놓을 수는 없다. 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 더보기
박용철의 '안 가는 시계' ​​나무에 매달린 박용철 시인의 짤막한 시는 우리 동네 도서관 뜰에서 발견한 것이다.옛날부터 단 한줄로 이루어진 시들 중에는 사물이나 상황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한 것들이 많았다.이번에 본 박용철의 '안 가는 시계'도 그런 시 중 하나이다.망가져서인지, 아니면 배터리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멈춰진 시계를 보고 한 시인의 말은 참으로 절묘하다.멈춰진 시계에 대한 시인의 느낌이 너무 적확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무엇보다 혼자 배시시 웃었다.'엄숙한 얼굴'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안 가는 시계 박용철 네가 그런 엄숙한 얼굴을 할 줄은 몰랐다 더보기
조병화의 낙엽끼리 모여 산다 눈깜짝 할 사이에 오지 않을 것 같은 가을이 왔고 어느새 주변은 붉은 단풍으로 아름답다.오늘은 아직 물이 깊이 들지 않은 붉은 단풍길을 걸어, 볼일을 보러 시내를 다녀왔다.찬란하기만 한 단풍을 보는데 갑자기 슬픈 생각이 난 것은 스산한 가을 공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그러다가 문득 조병화 시인의 '낙엽끼리 모여 산다'를 떠올렸다.조병화 시인은 이 시를 아마도 나처럼 50이 넘은 나이나 아니면 더 지긋한 연세일 때 쓴 것이 분명하다.인생의 가을 같은 시절을 살면서 지난 슬픔에 너무 담담하다.아무리 애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이제 그것에 더는 베이지 않는다.절대로 젊은 날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와 함께, 세월과 함께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이 요즘은 많다.이 시가 꼭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 더보기
장석주의 '대추 한 알' ​10월이 다가 오니, 우리 동네 아파트 화단에 있는 대추도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색깔이 짙어지는 대추를 보니, 가을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그러면서 장석주의 '대추 한알'이라는 시가 떠올랐다.그냥 가을이 오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특히, 개인적으로 이번 여름에는 일이 너무 많았다.우리 동네 하천에 사는 집오리들 때문에 태풍과 장마, 더위가 예전같이 느껴지지 않고 내내 마음 졸이는 걱정거리였다.그러던 끝에, 바로 가을의 문턱에서 5마리의 오리들 중 4마리가 죽었다.그러고 나니, 대추가 익어가는 모습이 감동스럽기만 했다.여름의 악천우와 병충해를 모두 극복해서 열매를 맺고, 그것을 잘 익히고 있는 대추나무가 대견스러운 느낌이다.자연에서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기적이라는 걸 이번 여름에 배웠다.장석주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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