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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김남주의 '창살에 햇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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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스하고 포근했던 날이었다.

겨울이라지만, 마치 늦가을 같아서 김남주시인의 '창살에 햇살이' 시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시인이 감옥에서 그날 느꼈던 햇살이, 바로 이런 햇살이었을 거라 생각하면서 하천가를 걸었다.

내게 김남주 시인은 아물지 않고 계속 덧나는 아픈 손가락 같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밤을 새고 용기를 키우고 울기도 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를 너무 빨리 잃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고도 또 세월이 흘러 나는 시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어버렸다.

그렇게 세상을, 세월을 빠져나왔다.

김남주 시인을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데, 시인을 생각하면 이 시에 나오는 목을 감아준 목도리 같기도 하고 옛 연인 같기도 한 기분이다.

그렇게 우리 청춘의 사랑이었던 김남주 시인!

오늘은 햇살이 너무 좋아서 '슬픈' 날이다.

 

창살에 햇살이

                                김남주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폴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깊어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 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서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그녀와 주고받고는 했던

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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