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인의 마을

나희덕의 '그런 저녁이 있다!

반응형

나희덕의 '그런 저녁이 있다' 시에 등장하는 풍경은 내게도 익숙하다.

꽃이 피어 있는 하천가의 둑방!

저물 무렵의 대기!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풍경!

이런 것들은 모두 나도 자주 경험하는 것들인데, 나희덕 시인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펼쳐놓은 걸까?

하천가를 걷다가 '참 좋다!' 생각한 것들은 마치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다.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속에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서 있으려 한다

내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힌 때까지

 

에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반응형